학교역사


주보성인

성 정하상 바오로

한국천주교회 첫 신학생
수원가톨릭대학교 주보성인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 1795 경기도 양근땅 마재에서 출생
· 1836 초대신학생(김대건, 최양업, 최방지거) 변문까지 안내
· 1838 신품 공부 시작
· 1839.7 체포, 상재상서 제출
· 1839.9.22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
· 1925.7.5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
· 1984.5.6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는 1795년 경기도 양근땅 마재에서 학문과 신앙의 명가인 나주 정(丁)씨 선암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유 세실리아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부친은 약현, 약전, 약용 형제 가운데 셋째로서 일찍이 성호 이익으로부터 실학을 사사 받았고, 훗날 광암 이벽(세례자 요한)과 만천 이승훈(베드로)의 권고로 천진암 강학회원으로 활동하다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였던 명도회(明道會) 회장으로서 상·하권으로 된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 등을 저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파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맏아들이었던 정철상(가롤로)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부친과 형이 순교한 후 정하상은 누이 정혜(엘리사벳)와 함께 어머니의 지도로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학문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삼촌이었던 다산 정약용(요한)이 귀양에서 풀려나 마재로 되돌아 온 후로는 그의 영향도 지대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함께 평신도 지도자들을 잃은 한국 천주교회가 좀처럼 부흥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황하고 있었을 때 정하상은 윤진길(아우구스티노), 현석문(가롤로) 등과 함께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신앙을 불태우며 교회 재건에 열중하는 한편 한국교회에 성직자들을 파견해 주도록 북경의 주교를 상대로 성직자 영입사업을 활발히 추진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로마 교황청 포교성성은 1831년 조선교구를 설정하기에 이르며, 이후 중국인 여항덕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앵베르 범주교, 모방 나신부, 샤스땅 정신부 등 선교사들을 변문(邊門)에서 속속 영입하는 영광 속에 조선교구는 활기를 되찾음과 아울러 열성적 선교로 신자들이 날로 증가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특히 조선교구 2대 주교였던 앵베르 범주교는 학문과 수덕과 신망이 두터웠던 정하상을 사제가 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 평가하고서 신학과 라틴어 등을 가르쳐 사제로 양성하려 했으나, 또 다시 일어난 기해박해로 정하상은 사제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1839년 7월 12일 체포되자 정하상은 미리 준비한 최초의 호교적 작품인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올려 박해의 부당함을 항변했으며, 결국 그해 9월 22일 부친과 형이 순교했던 서소문 밖에서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정하상은 같은 해 11월 23일 옥에서 순교한 어머니 유 세실리아와 12월 29일 역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누이 정정혜와 함께 1925년 로마에서 시복되었으며, 1984년 본 대학교가 개교하던 해에 서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시성되었다. 사제양성기관인 본 대학교는 한국천주교회 첫 신학생이며, 본 대학교가 개교하던 해에 시성되신 성 정하상 바오로를 주보로 모시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성인의 간구로 성인과 같은 영성과 지성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사목자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